실크로드 교역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는 대체로 기독교 공동체도 함께 부흥했던 시기였다. 발굴되고 있는 많은 기독교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8세기 탈라스 전투 (*주 -키르기스스탄, 탈라스강 근처 (주반토베 또는 준토베 성터),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와 카를루크 연합군간의 전투, 전투원인은 당나라는 서역 진출을 통해 실크로드를 장악하고자 했고,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세력 확장을 위해 동쪽으로 영토를 넓히려 했다.)에서 아랍군 아바스 왕조가 승리하면서 들어오기 시작한 이슬람문화는 이후 세를 늘려가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크리스찬을 압박했다. 세금 혜택을 주는가 하면 때론 위협적인 방식으로 동방 기독교인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신앙의 선조들은 순교까지 하며 신앙을 잘 지켜왔다.
부라나타워 (현재 높이 21m)
키르기즈스탄 내 믾은 고대 유적지는 원래 기독교 공동체가 세를 얻고 있을 때 처음 지어져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후에
이슬람 세력이 강화되면서 유물의 형태와 목적이 변경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슬람 세력이 강화되면서 유적지화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안고 있는 유적지 가운데 하나가 부라나다.
부라나는 실크로드가 부흥하던 10세기 수도 비쉬켁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지점, 지금의 토크목 남쪽 10킬로미터 지점에 세워졌다. 11세기 투르크 카라카니드 왕조의 수도로 추정되는 발라사근이라는 옛 도심 안에 세워졌다. 원래 지어질 때는 약 45미터의 높이였으나 15세기 큰 지진으로 꼭대기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현재의 높이는 8층 높이인 약 25미터. 1970년대 본격적인 복원이 이뤄지기 까지 마을 주민들은 부라나 돌을 뜯어 마을의 집을 짓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10세기 투르크 카라카니드 왕조시 네스토리안 인구 밀집지역에 세워졌다”고 본다. 이를 증명하는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부라나 타워는 카라하니드 왕조의 건축 기술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기도하다.
우선 인근에서 십자가 묘비, 동전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박물관 안에는 출토된 네스토리안 십자가 묘비, 십자가 목걸이 등 기독교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이전에는 일반에 공개되었다가 최근 들어 박물관 창고로 내려간 기독교 유물들도 있다.
부라나 주변지역에서는 매장된 크리스찬 시신과 함께 다량의 십자가 돌, 철제 십자가 청동 십자가가 출토되기도 했다. 중요한 유물들은 옛 소련시절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부라나 탑 주변에는 요새로 쓰인 언덕, 왕족들의 지하 무덤도 발굴되었다.
주 탑 주변에 4개의 종교 건물이 발견되었는데 발굴 유품으로 보아 교회공동체, 불교사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라나 건물 용도와 관련, 당시 오가는 상인들을 보호하는 망대로 사용되었다는 주장과 왕조의 위엄과 위상을 과시하기위해 세운 단순한 첨탑이라고 하는 주장, 중국과 몽골군대를 감시하기 위한 탑이라는 주장이 있다.
【주변명소】악베심, 토크목,
【체크포인트】부라나 박물관, 다량의 청동, 철제 십자가 묘비 보존 전시 교회공동체와 불교 불상 관련 4개 종교기관 유물 발굴 지하무덤, 요새로 쓰던 언덕이 공존 목욕탕, 시장 터, 장식품 가게터 발견, 일부 기독교 유물은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 박물관 전시. 부라나 박물관 지하 창고에도 기독교의 유물이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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