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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스/기독 자료

중앙시아시아 근대 기독교 약사 한편 키르기스에는 1226년에서 1373년 사이 네스토리안 묘비들이 많이 발 견되었다. 터키어로, 시리아어로, 때론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카라즈가치, 부라나, 크라스니야레치카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주마굴로프(Jumaglov)의 책 전체는 키르기스 경내의 모든 묘비 글을 학문적으로 규명한 책인데, 이 책의 절반 이상은 키르기스 경내에서 발굴된 네스트로안 크리스찬들의 묘비석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가 구소련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앙아시아 국가가운데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많은 양의 네스토리안 묘비와 유적이 발견되었고, 그만큼 발견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에서 기독교 묘비가 많이 발굴된 이유 중 하나는 지역적으로 키르기스가 천산북로와 .. 더보기
중앙아시아 중세 기독교 역사 기독교 교회 유적 발견 키르기스스탄안에서 부흥을 주도했던 타르사-겐트(Tarsa—kent), 타라즈 (Taraz), 멜키(Mirki), 악-베심(Ak-Beshim, *주-Ак-Бешим(Ak-Beshim)은 서구 튀르크 카간의 중심부였던 중세 도시 수야브(Suyab)의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의 교회들은 6~11세기까지 부흥했다. 중양아시아와 중국의 카쉬카르까지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14세기 말까지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753년 탈라스 전투로 아랍연합군 아바스 칼리프군이 승리하자 이슬람이 중앙아시아로의 동진이 자유롭게 활동이 개시되었다. 그러나 키르기스 교회는 위축되지 않았다. 900년경 악베심(Ak—Besim)에 있었던〈샤호리스탄(Shahristan〉교 회 공동체는 이슬람 진출이후도 부흥했다 (*주 –샤.. 더보기
중앙아시아 초기 기독교 역사 중앙아시아의 전도자 족속 – 소고드인, 스구디아인   골로새서 3장 11절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라는 구절을 보자. 이 는 키르기스인들의 조상이 그리스도인임 암시한다. 왜냐면 스구디아인(삭, 삭기, Scythian)들은 키르기즈인들이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 인종이기 때문이다. 도마행전을 참고하면 도마와 안드레가 이 지역을 선교한 결과로 보여진다(*주-동방 정교회 전설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지역은 최초 기독교 12 사도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가 1세기 중반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성령은 그를 "인도 케라랄주 지역"으로 인도했다. 현대의 이해와는 달리, 기원후 1세기에는 이 이름은 현재의 힌두스탄 반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 너머의 모든 지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 더보기
키르키스스탄 기독교 약사 중앙아시아 선교의 시작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점령되었을 때,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1차 점령을 받았을 때부터,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가 돌아오지 않고 정착했던 지역들이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들이다. 마태복음 10장 6절에 주님이 언급한 '이스라엘 의 잃어버린 양은 이스라엘을 떠나 살아가는 흩어진 나그네' (벧전 1:1) 즉 실크로드를 개척해 나가면서 주변 나라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중 많은 유대인들이 실크로드 본선을 따라가며 동쪽 주변나라들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까지 이르러 정착했다. 키르기스 민족을 '잃어버린 성경의 지파 중에 하나’라고 언급하기까지 한다. 사도행전 2장 9 절에 언급한 민족들도 이 지역의 민족들이다. 로마의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누가복음 10장 1절에 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