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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여행/키르키스 유적지

키르키스스탄의 보석 - 부라나 미나렛 과 전설

Burana Tower는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유명한 건축 기념물이며,  이 유적은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Bishkek에서 80km, Burana 정착지 유적의 Tokmak시에서 12km 떨어 지점에 세워졌다. 그 모습은 우즈벡 건축과 관련이 있다. 

부라나 미나렛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키르키스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아름다운 건축 양식과 흥미로운 역사, 그리고 전설을 통해 여러분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1. 역사적 배경

부라나 미나렛은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카라카니드 왕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이 지역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로인 북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투르크 카라카니드 왕조는 이슬람을 국교로 삼았다.

2. 건축 양식

부라나 미나렛은 지어질 때는 약 45m의 높이였으나 현재는 꼭대기 부분이 떨어져나가 높이가 24m, 지름이 10m이며, 벽돌로 이루어진 원형의 탑 형태를 하고 있으며,  탑의 몸체에는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와 쿠픽 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옥탑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3. 도시와 종교적 연관성

부라나 미나렛이 위치한 곳은 과거 "바라한 (이전 이름은 발라사근 (Balasaghun, 10세기-12세기 카라카니드 왕조시대 명칭) 이라고하였음- 주: 현재 "발라사근"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는 반면, "바라한 (Barakhan, 바라칸은 왕 또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당시 이 수도를 지배하던 왕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하였다고 함 ) "이라는 이름은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더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번영하는 도시였습니다. 바라한은 카라카니드 왕조의 수도였으며, 동서양 문화가 교류하는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이슬람 세력이 강화되면서 이슬람 유적지화 되어 , 부라나 미나렛은 모스크의 미나렛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전설

부라나 미나렛과 관련된 유명한 전설이 있는데,  키르키스 칸에게는 딸 무나라 (번역하면 탑, 첨탑을 의함.) 가 있었는데  공주가 마녀의 저주로 18살 생일날 죽게 된다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은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탑을 짓고 공주를 그곳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공주에게 음식을 전달하던 하인이 마녀의 계략에 속아 독이 든 음식을 공주에게 전해주고 말았습니다. 결국 공주는 18살 생일날 숨을 거두었고, 슬픔에 잠긴 왕의 눈물로 인해 탑의 꼭대기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