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전도자 족속 – 소고드인, 스구디아인
골로새서 3장 11절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라는 구절을 보자. 이 는 키르기스인들의 조상이 그리스도인임 암시한다. 왜냐면 스구디아인(삭, 삭기, Scythian)들은 키르기즈인들이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 인종이기 때문이다. 도마행전을 참고하면 도마와 안드레가 이 지역을 선교한 결과로 보여진다
(*주-동방 정교회 전설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지역은 최초 기독교 12 사도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가 1세기 중반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성령은 그를 "인도 케라랄주 지역"으로 인도했다. 현대의 이해와는 달리, 기원후 1세기에는 이 이름은 현재의 힌두스탄 반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 너머의 모든 지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가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는 다른 부족 사람들, 즉 현대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조상들에게도 전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도 도마가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복음 전파
사도행전 2장 9절에도 나와있듯이 스구디아인의 후예들은 고대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믿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순절에 자국어로 복음을 듣고 고향에 가 복음을 전하였다. 같은 시대에 안드레는 실크로드 북부 지역의 잘 알려지지 않는 지역으로 다녔다. 도마행전에는 도마가 35~60년 사이 중앙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디두모라는 이름을 가진 도마는 실크로드 본선을 따라 순례를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키르키스 땅 남쪽인 오쉬 와 우즈겐을 통과하였다. 도마는 실크로드에서 '디오니시'라는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고 박트리아인, 하르카나인, 바대인들의 목자로 세워졌다. 고대의 삭스(삭키, 스구디아인)들이 살던 이 지역은 바로 중앙 아시아 대 초원 지역이다.
키르기스의 초기 기독교역사에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840년 위그루 제국을 격파하고 키르기스 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그 중심에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몽골 침략 이전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구소련이후 네스토리안 교도들의 쇄퇴
그 후 공백기를 거쳐 러시아 침략과 함께 동행한 러시아정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슬람이 다수를 이룬 것은 대체로 중앙아시아 티무르제국 이후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주-티무르 자신은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그의 제국은 종교적으로 다양했으며, 네스토리안 기독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가 허용되었다. 티무르는 종교적 관용 정책을 추구했으며, 네스토리안 기독교 신자들에게 자유로운 예배와 신앙을 허용했다. )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티무르 제국의 여러 도시에서 번성했다. 특히, 사마르칸트, 부하라, 테르메즈 등의 도시에는 많은 네스토리안 기독교도들이 거주했다. 이들은 무역, 예술,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5세기 이후부터 키르기스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키르기스의 민족 서사시〈Manas epic)에서도 초기 키르기스 기독교(TaPca, Tarsa)를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골짜기에 살고 있으며. 그 근처에 페르시아인들이 살고 있다.”고 나와 있다.
마나스에는 또 “칼막(Kalmak), 크타이(Khtai), 타르샤(Tarsa), 죠트들은 이곳에 많다
(Joot, *주-위그루족 yurt (유르트) 또는 yugur (유구르)라고도 불리는 Joot (조트)족은 튀르크계遊牧 (유목) 민족으로, 현재의 키르기스스탄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의 톈산 산맥 (천산 산맥)에 거주했다. 이들은 5세기경부터 이 지역에 거주한 최초의 튀르크계 민족 집단 중 하나로 여겨진다).
모든 부족들은 동쪽을 향하여 자기 믿음으로 기도한다. 텡그리(Tengri)에게 보호해달라고 하며 성호를 그으며 아멘했다“고 되어있다.
Source :중앙아시아 키르키스스탄 순례길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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