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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키르키스스탄

탈라스 전투와 마나스 영웅의 고향 탈라스

Talas Battle Field & Manas Ortho and Hometown

전투의 배경:

751년 키르기스스탄의 타라스 근처에서 벌어진 탈라스 전투는 제국과 문화의 충돌이었다.

동양의 강국 당나라: 비단길을 따라 서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당나라는 강력한 이슬람 제국 아바스칼리프와 대치하게 되면서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팽창의 충돌: 두 제국 서쪽과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무역로를 장악하려 했고, 아바스칼리프는 이슬람을 전파하려 했다. 그래서 탈라스는 중앙아시아 지배권을  쟁탈을 위한 전쟁터가 되게 되었다.

문화적 교차로: 이 전투는 단순히 땅을 차지하기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당시 당나라는 동양 문화와 서쪽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이 상승하는 사이의 충돌의 교차로에 있었고,  비단길을 따라 두 세력간의 다툼으로  승리자는 중앙아시아의 문화와 종교와 기술의 문물을 전달하는 교역로를 형성하게 된다.

결과와 유산: 아바스칼리프의 승리는 당나라의 서쪽 진출을 저지하게 하였다. 전투의 즉각적인 영향은 지역적이었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의 중앙아시아 전파는 더욱 굳건해져 수 세기 동안 이 지역의 문화적, 종교적 구성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영향하에 키르키스오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문화오 종교는 생활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쟁의 영웅들:

특정 장수들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당시 양측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이름은 알 수 있다.

당나라: 당나라는 중앙아시아에 주둔하던 군수권자인 **고 선지(高仙芝)**가 이끌었다.

아바스칼리프: 아바스칼리프 군대는 아바스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군 지도자로 **아부 무슬림 호라사니( ابو مسلم خراسانی )**가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마나스 서사시와 키르기스의 영웅

마나스 서사시는 키르기스 문화의 초석이며 전설적인 영웅 마나스와 키르기스 민족을 통일하려는 그의 노력을 기록하고 있다.

서사시(Manas epic): 마나스는 방대한 구전 서사시로, 마나스치(Manaschi)라고 불리는 키르기스 이야기꾼들에 의해 대대로 전승되왔다.

통일의 힘: 강력하고 용감한 전사인 마나스는 흩어져 있던 40개의 키르기스 부족을 하나로 묶어 다양한 적들에 맞서 싸면서 그 상황과 배경을 구전 서사시로 마나스치들에 의해 전달되었다. 이 서사시는 용기, 명예, 그리고 단결과 같은 키르기스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마나스 영웅 출생지 논란: 마나스의 정확한 출생지는 전설과 논란의 대상이지만, 일부는 그가 키르기스스탄의 타라스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반면,또 다른 일부는 이씩-쿨 호수 근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적 맥락: 이 서사시는 환상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전해진 구전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키르기스 부족들의 통일은 외부적인 압력에 맞서 벌어진 실제 투쟁을 반영하고 있다.

마나스 서사시는 여전히 키르기스 민족 정체성의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대학에서도 마나스학(Manaslogy)이라는 과목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마나스치들은 계속해서 이 서사시를 연주하여 이 문화적 보물을 미래 세대에게 살려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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